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노인혐오 이유있다" vs "그래도 공경해야"..깊어가는 '혐로(嫌老)'

문화·패선·취미·노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8. 9. 18. 11:17

본문




"노인혐오 이유있다" vs "그래도 공경해야"..깊어가는 '혐로(嫌老)'

김지연 입력 2018.09.18. 07:07 수정 2018.09.18. 07:29   
     


[혐오의 파시즘-세대 간 혐오] 젊은 세대의 노인 혐오 진단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비하하는 혐오 표현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젊은 세대들은 노인 부양의 부담을 떠안았다는 거부감과 함께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일부 노인들의 과격한 행동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세대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공경하고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겨왔지만 이제 ‘경로(敬老)’는 옛말이고 ‘혐로(嫌老, 노인혐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인 혐오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모두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노인 혐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사용되는 노인 비하와 혐오를 담은 용어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노인 세대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부정적인 시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서다. 이전부터 사용되던 ‘노인네’ ‘꼰대’는 평범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노인이란 단어 뒤에 벌레충(蟲)자를 붙여 ‘노인충’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고, 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라는 뜻의 ‘틀딱충’과 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한 ‘할매미’, 나라에서 주는 노령연금 등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을 ‘연금충’이라고 비하하며 ‘한심한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


온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노인을 향한 조롱이 이어진다. 지난 5월에는 경북 경주시의 한 피자가게 아르바이트생이 한 중년 남성 손님의 영수증 배달 주소란에 ‘8시까지(말귀 못알아 X 먹는 80대 할배) 진상’이라고 남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주제보’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노인 혐오에 이유 있다”는 젊은 세대 
          

젊은 세대는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를 내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노인들을 보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회사원 정모(28)씨는 17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꼭 다른 사람의 허리나 엉덩이를 손이나 팔로 밀면서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다”며 “빨리 길을 트고 지나가 자리에 앉기 위해서라고 이해해 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매번 너무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 다 저렇게 다른 사람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는 건가”라며 “나도 저런 노인이 될까 봐 두렵다”고 덧붙였다.


워킹맘 이모(33)씨는 임산부 시절부터 노인들에게 수모를 당해 그때부터 노인을 혐오하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임산부 때 지하철이나 버스 노약자석에 앉아있으면 꼭 와서 한마디 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며 “‘임신한 거 맞냐? 증명해봐라’ ‘임신이 대수냐’라는 말을 듣고도 몸이 힘들어 계속 앉아갈 수밖에 없을 때는 정말 울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2016년에는 임신 27주의 여성이 퇴근길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70대 노인에게 폭행과 추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만취한 노인이 여성이 임신부가 맞는지 확인한다며 임부복을 걷어 올리고 배를 가격하기도 해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2030세대 81.9% “세대갈등 심각”…청소년 66% “더 심해질 것”


노인 세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은 통계자료로도 증명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처음으로 전국의 노인(65세 이상) 1000명과 청·장년(19~64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여 ‘노인 인권 종합보고서’를 만들었다. 조사 결과, 청년(19~39세) 응답자 중 80.9%가 ‘우리 사회가 노인에 부정적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 인권이 침해된다’고 답했다.


청년들이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주된 원인은 일자리·복지 갈등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응답자의 56.6%가 ‘노인 일자리 증가 때문에 청년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는 문항에 동의했다. ‘노인복지 확대로 청년층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고 답한 청년응답자는 77.1%에 달한다. 고령사회에서 부양해야 할 노인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청년들의 우려가 드러난 것이다.


세대 갈등에 대해서도 청년층이 훨씬 심각하게 느꼈다. ‘노인·청년 간 갈등이 심하다’는 문항에 2030세대 81.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노년층(44.3%)의 거의 2배 수준이었다.


지난해 4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세대문제 인식 실태조사’에서는 청소년의 66.6%가 앞으로 세대갈등이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 “노인 혐오 완화 위해 모두 노력해야”


방희명 남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7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젊은 세대의 노인 혐오가 심화하는 이유에 대해 “현대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노인들은 여러 면에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예전처럼 지혜롭고,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선배로서의 역할이 많이 사라지게 됐다”며 “역할이 쇠퇴한 노인 세대를 사회적 부담으로 인식하게 되고, 젊은 세대는 이들을 다가올 개인의 부담으로 여기게 되면서 노인 세대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 교수는 점점 과격해지는 노인 혐오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젊은 세대는 지금의 노인 세대를 자기 미래의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며 “약자를 당연히 대접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처럼 노인들도 우리를 길러낸 선배세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층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예전처럼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권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새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스스로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전 세계 유례없는 고령화 속도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통계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17 인구주택총조사-등록센서스방식 집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 우리나라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4.2%인 711만5000명에 달해 우리나라는 ‘고령사회’ 진입을 확정했다. 2000년 ‘고령화사회’로 들어선 지 17년 만이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적으로 빠른 일본이 1970년 고령화사회에서 1994년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24년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는 유례없이 빠른 것이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각각 구분한다.


반면,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3619만6000명으로 전년(3631만2000명)보다 0.3%인 11만6000명 감소했다. 생산연령인구가 감소세로 전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