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술 만들어 먹는 존 프랭클 연세대 교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이렇게 훌륭한 맛 내는 술 드물어”
"시중에서 파는 술이 너무 맛이 없더라고요."
존 프랭클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원 교수는 집에서 증류식 소주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 ‘특이한’ 외국인이다. 한국 생활 10년이 넘은 ‘반은 한국인’이지만 외국인이 보통 호평하곤 하는 시중 소주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프랭클 교수는 더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2010년부터 집에서 술을 담가 마시기 시작했다. 제대로 술을 만들어 보자고 마음 먹고 2013년부터 한국가양주연구소 등에서 초급부터 고급 과정까지 모두 마스터 했다.
“술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 시중 술은 마시기 힘듭니다. 이렇게 좋은 전통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인들이 천편일률적인 맛의 소주만 마시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프랭클 교수에 따르면 소주의 맛은 재료에서 90% 이상 결정된다. 잘 띄운 누룩에 질 좋은 쌀만 있으면 술맛은 이미 보장된다는 설명이다.
"쌀과 누룩을 넣고 너무 덥지 않은 봄 가을 겨울에 상온에서 잘 발효만 시키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술이 만들어 집니다. 여기에 쑥이나 송홧가루 등 제철 재료를 가미하면 금상첨화죠."
잘 발효된 술은 가라앉은 부분은 탁주로, 위로 떠오른 맑은 술은 청주로 즐길 수 있다. 이 청주를 증류기에 넣고 가열하면 전통 소주를 맛볼 수 있다. 온도에 따라 증류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조절할 수 있어 40도 넘는 고도수 소주도 만들 수 있다.
프랭클 교수는 “잘 빚어진 청주를 증류하면 얻을 수 있는 소주는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식 증류 소주는 비용과 시간 등을 많이 투자해야 맛볼 수 있는 고급 술”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직접 만든 40도짜리 소주를 시음해 봤다. 높은 도수라 첫 맛은 중국 술 고량주처럼 썼지만 뒷맛은 찹쌀 특유의 단맛이 느껴져 담백했다.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실 때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거북한 뒷맛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프랭크 교수는 "고급 위스키는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느낌을 누르며 술을 마셔야 하지만,한국 전통 소주는 독해도 자연스럽게 위로 흘러 내려가는 느낌을 받는다”며 “좋은 재료로 증류해 만든 한국 소주는 많이 마셔도 다음날 심한 숙취도 없다"고 강조했다.
전통 소주를 만드는 외국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간혹 오해 섞인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만든 술을 나눠 달라거나, 술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가 정기적으로 술을 나눠주는 친구를 포함해 그의 전도(?)로 주(酒)님 만들기 삼매경에 빠진 외국인 친구도 여럿 된다. 위스키의 고장인 스코틀랜드 출신 친구도 그의 소개로 한국 소주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프랭클 교수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이렇게 맛있는 술을 얻을 수 있는 건 한국 술의 최대 장점”이라며 “특히 오랜 시간을 쓰지 않고 주변의 좋은 사람과 술을 나눠 먹는 것도 술을 만들어 느낄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 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의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된 현대문학 수업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학생도 종종 있다고 한다. 프랭클 교수는 같은 문학을 놓고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끼리 토론하는 수업도 자주 진행한다. 이런 토론이 문학을 즐기는 더 다양한 방식을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전달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랭클 교수는 “술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며 “한국 술을 다른 시각으로 봤기 때문에 나만의 술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프랭클 교수는 은퇴 후 전통 술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수제 주류 업계에서 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하지만 술을 일이 아닌 취미로 즐기고 싶은 게 프랭클 교수의 바람이다.
그는 “술 만드는 게 직업이 되면 지금의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거 같아 걱정이지만, 내가 만든 소주가 주점 진열대에 올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며 웃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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