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시 남구 주안동의 한 다세대 건물 옥상에서 구청은 대대적인 쓰레기 처리 작업을 벌였다. 건물 옥상에 무려 3.5톤 가량의 쓰레기가 무단 투기, 방치되어 썩어가고 있었다. 쓰레기 속 영수증을 단서로 무단투기한 사람들을 확인한 결과, 그들은 바로 옆 고층 오피스텔 주민들이었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시민의식 실종이라는 키워드로 다루었지만, 그 시발점은 바로 '빈집'이었다.
"건물주가 매물로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아 3년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웃들은 방치된 곳이니 마구 망가뜨려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빈집은 이처럼 주민들의 시민의식을 약화시키고, 주변 지역을 빠르게 슬럼화한다."(196쪽)
마강래의 <지방도시 살생부>를 따라 가면서 인구 감소에 직면한 지방도시의 운명에 관해 생각해 보자. 저자의 추산에 따르면 2040년에는 지방 도시 30%가 사실상 파산할 것이다. 이들 도시는 중앙정부 보조금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인구가 적어도 사람들을 강제 이주할 수는 없는 법이고, 그들에게 전기, 수도, 도로 등 생활 인프라를 제공하려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줄어든 인구에서 나오는 세수로는 결코 충당할 수 없는 돈이 들어가는 블랙홀이 전국 곳곳에 생기는 것이다. 부족한 지자체 재정은 당연히 중앙 정부의 지원금, 즉 국민 세금으로 메워진다.
해리 덴트가 <인구 절벽>이라는 과격한 제목의 책을 히트시킨 이후로, 자연적 인구 감소에 의한 미래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커져만 가고 있다. 하지만 이 책 저자가 지적하듯, 절대적 인구 감소보다는 상대적 인구 감소가 문제의 핵심이다. 통계청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30년까지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증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방 도시들 대부분에게 인구 감소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신생아가 적게 태어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대도시로 빠져나가는 청년들이 지방 도시가 현재 처한 인구 문제다. 그렇다면 왜 청년들이 주변 대도시로 떠나는가? 일자리 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경제 문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도시가 쇠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민들이 떠나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물리적으로 노후화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중략) 경제적 쇠퇴와 인구적 쇠퇴, 물리적 쇠퇴는 서로 맞물려 돌지만 그 시작점은 경제적 쇠퇴다." (65-66쪽)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도시 팽창이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 대도시와 수도권에 인구를 빼앗기는 것이 중소도시의 운명이다. 그런데 택지 개발을 통한 신도심 개발, 즉 신규 아파트 공급은 중소도시 그 안에서조차 인구유출 문제를 발생시킨다.
사람들은 새집에 살고 싶어 한다. 원도심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둘 신도심의 새 아파트로 이주한다. 그리고 인구의 이동과 더불어 상권도 이동한다. 원도심의 전통시장은 쇠퇴한다. 종종 시청조차도 신도심으로 이주하여 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원도심을 살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책에 나오는 문경시의 경우를 보자. 문경시는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차 없는 문화거리'를 조성하고 소규모 공연장까지 갖추었다. 원도심이 살아나자, 신도심이 위축되었고, 이에 따라 신도심 상권이 반발했다. 신도심 주민들은 현재 전선 지중화 사업과 문화의 거리 조성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공식 제출한 상황이라 한다. 지역내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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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도시에서 외곽 택지개발은 필연적으로 도심의 쇠퇴를 가져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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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5년간 50조 원을 투입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에 따르면 이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지자체를 살리려 하다가는 어느 지자체도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중소도시의 인구 감소는 대도시로의 인구 유출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블랙홀은 수도권이다.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모든 도시는 서울에 인구를 빼앗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울과 수도권에 맞짱 뜰 수 있는 지방 대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지방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집들이 더 듬성듬성해지는데 마을의 전통시장이 어떻게 활성화될 수 있겠나. 하수도를 정비해도, 사회적 기업을 지원해도, 생태관광사업을 해도 살아날 수 없는 마을이 부지기수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의 재생사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인구가 더 이상 흩어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 이미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에 투자가 집중되어야 하고, 더 이상의 외곽개발은 금지시켜야 한다." (180-181쪽)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저자는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도시위축의 현실을 인정한다. 그래야 인구 감소에 대비한 도시계획이 가능하다. 현재 전국 중소도시 대부분은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고 미래 산업이 지역특화 산업으로 뿌리내리는 장밋빛 전망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래서는 변화가 어렵다.
둘째, 압축 도시를 설계, 유도하여야 한다. 저자는 일본에서 이미 널리 실시 중인 '입지적 정화계획'을 우리도 도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간단히 말해 압축 도시를 만들고 인구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도시 재활용 계획'이다.
셋째, 지역 특성에 맞춘 경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도시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는 없다. 지역주민 소비의 상당 부분이 지역 경제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지역에 뿌리내린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규모 프랜차이즈의 입점을 제한해야 한다. 미국의 소도시 오하이(Ojai)의 경우 체인점 입점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스타벅스가 없는 독특한 도시, 인구 7500명에 불과한 이 도시에는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어, 저자는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조언을 제시하며 책을 끝낸다. 도시 위축 징후가 나타나기 전에 사전적으로,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하되, 모든 지역을 살리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 롯폰기힐스를 보면 압축도시의 미래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대도시의 원도심 재생이다. 대도시에서 원도심 재생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것이 경제적으로 채산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 소도시에서는 외곽에 택지를 개발하는 것이 오히려 돈이 된다.
인위적으로 인구를 재정착시키는 일은 SF 소설이나 독재자한테나 가능한 일이다. 도시가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정착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이것은 쉬운 일도 아니고 단기간에 되는 일도 아니다. 그렇기에 시작은 빠를수록 좋다.
인구 감소는 분명한 미래다. 더구나 중소도시의 인구 위축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적어도 지방 도시의 무분별한 자기 팽창은 막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인구도 적은 지방 도시에서 외곽으로 택지개발이 계속되는 것은 지역 토호와 건설업자, 그리고 지방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검은 유착부터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