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맹신 사이’ 다저스, WS 정상 오를 수 있을까
기사입력 2017.10.27 오후 02:04 최종수정 2017.10.27 오후 02:04
[뉴스엔 안형준 기자]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LA 다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10월 28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미닛메이드 파크에서 '2017 월드시리즈' 3차전 경기를 갖는다.
양팀은 LA에서 1승씩을 나눠가졌다. 휴스턴으로서는 만족스러운, 다저스 입장에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다저스는 1차전에서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포스트시즌 7회 징크스'를 깨는 완벽투를 펼치며 기분좋은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투수교체 실패로 인해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2차전 패배로 다저스는 많은 것을 잃었다. 승기를 잡았던 경기를 놓쳤고 불펜의 필승조인 브랜든 모로우와 켄리 잰슨이 나란히 실점했다. 반면 포스트시즌 내내 침체됐던 휴스턴 타선은 2차전을 계기로 정규시즌 팀타격 1위팀의 면모를 되찾았다.
물론 한 경기에서 패했다고 시리즈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월드시리즈는 5경기가 남아있고 다저스와 휴스턴은 여전히 동일한 선상에 서있다. 지금부터 3경기를 먼저 이기는 팀이 올시즌의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전이 '분위기'의 싸움이고 제아무리 세이버매트릭스로 대표되는 숫자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야구는 여전히 '사람이 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다저스의 2차전 패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와 KBO리그는 분명한 수준차이가 있다.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선수들이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며 야구를 하고 있다는 점은 같다. 최근 포스트시즌을 치른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은 벼랑 끝 경기가 아니라면 선발투수를 불펜으로 기용하지 않겠다며 이런 말을 했다.
"선발투수를 구원등판시켜 한 경기를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한 경기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선발투수를 뒤에 넣는다는 것은 결국 '감독이 불펜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그 상황이 왔을 때, 과연 불펜투수들에게 막아달라고 할 수 있겠나".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을 때는 예외가 될 수 있만 감독의 '불신'이 선수에게 전해지는 것이 평정심을 갖고 마운드를 지켜야 할 투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김경문 감독의 발언은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의 다저스와 겹쳤다. 4이닝 동안 60구를 던지며 1실점 7탈삼진 호투를 이어가던 힐은 4회가 종료된 후 강판을 통보받자 덕아웃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로버츠 감독과 힐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이미 '4이닝을 60구 7탈삼진 1실점으로 막았어도 5회에 다시 올려보낼 정도로 힐을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특히 힐에게 공언한 셈이다. 올시즌 힐이 3번째 타순을 맞이했을 때 성적이 1-2번째에 비해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교체는 납득하기 힘들 수 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 베어스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더스틴 니퍼트(두산)에게 1점이라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니퍼트를 비롯한 4명의 강력한 선발투수에게 꽁꽁 묶인 지난해의 악몽을 떨쳐내고 대등한 시리즈를 치르기 위해서는 니퍼트의 무실점 기록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비록 시리즈에서는 패했지만 니퍼트를 공략해낸 NC는 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두산 선발진을 모두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니퍼트를 공략해냄으로써 두산 마운드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낸 것이 컸다.
휴스턴이 다저스의 '철벽 불펜'을 무너뜨린 것도 같은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월드시리즈 1차전까지의 다저스 불펜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마에다 겐타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갔고 모로우와 잰슨의 등판은 곧 경기 종료를 의미했다. 상대 타자들이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위압감이 있었다. 하지만 휴스턴은 체력적인 문제를 걱정해야할 때가 다가온 모로우와 잰슨을 무너뜨렸고 2차전의 경험은 남은 시리즈에서 휴스턴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강력한 불펜투수의 역할을 1이닝으로 제한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분위기는 이미 메이저리그 전체에 확산돼있다. 하지만 그것도 체력의 부담이 없을 때 가능한 것이다. 모로우와 잰슨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경기당 평균 1이닝 이상을 투구해왔고 다저스가 치른 10경기 중 9경기에 등판했다.
포스트시즌 무대가 선수들에게 주는 압박감,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감안하면 비록 다저스가 빠르게 앞선 시리즈들을 마쳤다고 해도 두 선수의 피로도는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단기전 불펜투수'의 새 지평을 연 앤드류 밀러(CLE)조차 월드시리즈 후반 결국 무너진 점을 생각하면 모로우와 잰슨의 한계가 밀러보다 더 일찍 찾아온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최근 다저스의 포스트시즌은 맹신과 불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1차전에서는 완벽투를 펼쳤지만 6회까지 호투하던 커쇼가 7회 무너지는 모습은 이미 익숙하다. 커쇼에 대한 지나친 믿음, 에이스에 대한 예우는 다저스의 가을을 망치곤했다. 반면 이번에는 불펜진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커쇼를 제외한 선발투수들에 대한 지나친 불신이 다저스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정규시즌 팀 타격 전체 1위였던 휴스턴은 포스트시즌 타격 부진을 씻고 '휴스턴다운 모습'을 보이며 월드시리즈 2차전을 멋지게 뒤집어냈다. 다저스는 가장 믿었던 불펜진이 무너졌고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다저스가 가진 최대의 강점인 마운드에는 흠집이 났고 휴스턴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타선은 날카로움을 되찾았다.
이제 시리즈는 휴스턴의 안방에서 이어진다. 분위기 반등에 성공하며 집으로 돌아간 휴스턴과 어수선한 가운데 적지로 향하는 다저스 중 과연 누가 시리즈의 승기를 잡을까.(자료사진=데이브 로버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