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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상징, 스털링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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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6. 4. 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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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상징, 스털링 실버

한경비즈니스|입력2016.04.25. 18:21|수정2016.04.25. 18:22

 

 

 

BIG story

귀족의 상징, 스털링 실버

 

앤티크의 역사를 공부했다면, 이제 본격적인 컬렉팅에 도전할 차례다.

 

앤티크 투자에는 방향성이 필요하다. 각 분야별로 가치 있는 앤티크가 무엇일지, 전문가 기고를 통해 그 기준과 이유를 찾아봤다. 먼저 스털링 실버다.

 

백정림 이고갤러리 대표│사진 서범세 기자

 

 

어린 시절 엄마는 고풍스러운 나무탁자 안에 떡살이며 주전자, 도자기 등을 넣고 그 위에 유리를 덮어 거실탁자로 쓰셨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것은 제주도 지방의 한국 앤티크였다. 지금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시절 거실에 놓여 있던 그 탁자가 생각나곤 한다. 이렇듯 앤티크 안에는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어 새것의 반짝거림은 범접할 수 없는 울림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전해지곤 한다.

 

 

한국 앤티크가 그런 것처럼 서양 앤티크의 종류는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서양 앤티크 종류 중에서 필자가 오랫동안 컬렉션해 왔던 스털링 실버, 도자기, 유리공예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러면 스털링 실버란 무엇일까. 16세기 스페인이 정복한 남미 대륙으로부터 대량의 은이 유입됐다. 은제품 사용이 활성화됨에 따라 무엇보다 은의 인증 여부가 중요하게 됐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국가가 주도하는 홀마크(hall mark)라는 제도가 도입됐다. 홀마크란 국가에서 은제품의 품질을 보증해주는 표시였다. 이는 거래의 신뢰도를 높여줌으로써 은제품 거래를 활성화시켰다.

 

 

은과 구리를 혼합해 더 반짝이는 실버로

 

14세기 초 은에 각인을 찍는 제도가 시작된 영국은 4개의 홀마크를 사용함으로써 스털링 제품임을 국가에서 인증해주었다. 유리에 27%의 산화납을 혼합해서 더 큰 반짝임과 공명이 있는 크리스털을 만들듯 은과 구리를 혼합한 스털링은 은보다 더욱 반짝이고 덜 변색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표범머리나 사자, 하프 등을 각인해서 92.5%의 은과 7.5%의 구리가 혼합된 스털링임을 인증한다. 이어 알파벳을 이용해서 제작 연도를 그리고, 도시 특유의 마크를 그려 넣어서 제품이 만들어진 지역을 표시한다. 마지막으로 은 세공기술자의 이름을 이니셜로 각인한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95%의 은과 5%의 구리를 섞어 스털링을 만든다. 이때 프랑스는 간단히 2개의 마크로 스털링임을 보증하는데 스털링 인증 마크와 제작 연도가 표시된다.

 

 

따라서 시중에 유통되는 은제품에 홀마크를 찍는 경우 법적 표준에 합격 판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순금 또는 순은에 합금하는 비금속(卑金屬)의 최대 비율을 규정한 것이지만 원산지나 품질을 나타내는 제반 표시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러한 홀마크 제도는 영국에서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입법화되면서 1300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앤티크의 대부분은 귀족들이나 상류층에서 귀하게 만들어져 쓰였던 애용품이다. 그런 이유로 스털링 실버는 앤티크 컬렉션에 있어서 중요한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예로부터 귀족의 삶은 곧 ‘실버 라이프(silver life)’라 칭할 만큼 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부유한 가정 출신의 사람을 말할 때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중세부터 은제품을 사용해 온 유럽에서 온 것이다. 은은 건강과 관련해서 귀족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널리 애용됐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은 은을 식기로 사용했는데 은 특유의 화려함과 더불어 자체적인 항균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 페스트가 유행할 당시 네덜란드 왕궁에서는 페스트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은 식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서양에서는 은제 컵을 사용해 감염을 막아 왔고 은화를 항아리에 넣어 우유의 변질을 막기도 했다. 또한 은은 독극물에 순간적으로 반응해서 검게 변색하므로 중세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그런 이유로도 은그릇을 귀하게 사용했다.

 

 

17세기 들어 영국에서는 손잡이 끝에 12사도의 상을 새긴 은으로 만든 12개의 사도 스푼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새로 태어난 아기의 첫 세례식에 아기의 대부가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선물이었다. 이것은 개인용 스푼에 이름을 새기는 풍습과도 관계가 있고, 생명과 건강의 상징이라고도 여겨 오늘날에도 세례나 결혼 축하 선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라는 말은 이러한 유럽 귀족사회의 풍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귀족의 자식들이 아니고서는 값비싼 은식기를 사용할 수 없었으니 귀족이라 함은 ‘실버 라이프’를 향유하는 삶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고 있는 대부분의 은제품은 19세기 이후의 것이다. 유럽에서 있었던 수많은 전쟁 때마다 각국의 왕들이 필요한 군자금을 은을 녹여 충당했기에 그 이전의 은은 거의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삼시 세끼 식사를 하는 데 필요한 포크, 나이프, 스푼 등의 커트러리다. 필자는 180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148피스짜리 프랑스산 커트러리 세트를 소장하고 있다. 12인용인 이 커트러리 세트는 조개패와 스털링이 조화된 아름다운 각각의 커트러리가 상아 손잡이의 가죽 상자 안에 들어 있다. 아직도 10여 년 전에 이 커트러리 세트가 필자에게 왔을 때의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앤티크를 컬렉션하는 것은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현대의 제품과는 사뭇 다른 기쁨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규모의 앤티크를 소장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큰돈을 지불해야 하기에 투자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앤티크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의 퀄리티다.

 

앤티크에 대한 퀄리티를 따질 때 중요한 것은 제품의 연대, 심미적 요인, 제품의 상태 등이다. 앤티크는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니 그 수가 유한한 것이다. 세월이 가면서 그 수가 줄어드니 희소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희소성 있는 물건이, 만들어졌을 때와 같은 상태로 흠 없이 완벽하고 아름답다면 값은 구매자가 아니라 팔고 싶은 사람이 정하는 격이 된다.

 

 

그것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일 때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던 1900년대 초의 800피스짜리 티파니 커트러리 세트는 처음에 1억 원에 경매를 시작했지만 2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완성도 높은 장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을 이 제품은 100년이 지난 후에도 역시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제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소장가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앤티크 컬렉션의 묘미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소장가는 몇 년이 됐든 혹은 몇십 년이 됐든 이러한 명품을 충분히 즐기며 생활 속에서 사용한 후에 처음 구입했을 때의 가격 이상으로 되팔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즐기는 예술품 중 때로 믿기지 않는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이 그림이다. 그 이유는 그림만이 유일하게 개인이 혼자 단독으로 소유할 수 있는 예술품이기에 그러하다. 오래돼 오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고 재생산도 불가능한 앤티크 또한 그림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실제로 필자가 앤티크 컬렉션을 시작한 10여 년 전보다 요즘 유럽의 앤티크 시장에서는 실버가 많이 귀해져서 유통되는 물건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국 앤티크 딜러들이 유통할 물건이 없어 사업을 축소하거나 접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이는 비교적 최근에 급부상한 중국 신흥부자들이 서양 앤티크 컬렉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10년 전쯤에는 유럽의 고급 앤티크 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중국인들이 이제는 유럽 앤티크의 주요한 컬렉터다. 이렇게 귀해진 앤티크 제품 중 대표적 스털링 명품 브랜드로는 프랑스의 퓨포켓(Puiforcat)·오디오트(Odiot)·크리스토플(Christofle), 미국의 티파니(Tiffany), 영국의 폴 스토(Paul Storr)·필립 런덜(Philip Rundull) 등이 있다.

 

 

이러한 명품 브랜드는 그 시작이 대부분 위대한 장인이 있어 가능했던 경우가 많다. 프랑스의 퓨포켓, 오디오트 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위대한 장인의 명성으로 왕실이나 귀족들에게 물건을 납품했고 그들의 공방이 이어져 오늘의 명품 브랜드가 된 것이다.

오늘날 시장에는 물건이 넘쳐나고 매일 새로운 상품이 기계의 힘을 빌려 대량 생산된다.

 

백화점 명품 코너에서는 반짝이는 새 물건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진정 귀하고 좋은 것은 백화점에 없다. 애초에 귀하게 태어나 오랜 세월을 견딘 앤티크 제품에는 새것의 반짝거림이 발하는 화려함보다 훨씬 더 영롱한 우직함과 우아함이 배어 있다.

 

 

앤티크 투자 시 유의점

 

흔히들 앤티크 딜러가 앤티크 컬렉터를 가장 잘 대접해주는 것은 싼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물건이 나왔을 때 제일 먼저 연락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앤티크 투자 시 주의할 점은 ‘보존성’이다. 고쳐지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온전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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