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음식> 곰치국, 묵은 김치와 흐물흐물한 살의 조화
연합뉴스입력2016.03.12 08:31
(삼척=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강원도 삼척의 긴 해안선은 아늑한 포구와 아기자기한 해수욕장, 파도 부서지는 갯바위들로 이뤄져 있다. 지난 2000년 개통된 새천년 해안도로는 정라항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관광도로로, 해안절경에 속이 훤히들여다보이는 코발트 빛 바다가 관광객을 매료시킨다.
정라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일출의 명소인 ‘달뜨는 언덕’과 소망의 탑이 반기고, 삼척의 별미인 곰치상과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상 등 조각 작품 10여 점이 설치된 비치조각공원에 닿는다. 삼척해수욕장까지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삼척의 관광명소인 새천년 해안도로는 풍광도 일품이지만 이곳을 다시 찾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곰치국 때문이다. 새천년 해안도로의 출발점인 정라항 부근에는 곰치국을 내놓는 음식점이 줄지어 있다. 요즘엔 식당마다 ‘곰치 있습니다’와 ‘곰치 없습니다’라는 간판을 내건다.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곰치는 냉동하면 금세 살이 풀어져 장기간 보관이 어렵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달려 물량 확보가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부들이 추운 겨울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술에 절은 속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어 먹었던 것이 삼척 곰치국의 기원이다. 30년 전만 해도그물에 곰치가 걸리면 살이 흐물흐물하고 모양이 징그러워 그냥 내다 버렸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는 어부에게 술은 더 없는 친구였다. 술독에 빠진 어부들은 다음날 아침 팔지 못한 곰치로 국을 끓여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흐물거리는 살 덕에 부드러운 곰치국은 거북한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이후 해장음식으로 입소문이 퍼져 나갔고, 삼척 별미 대표로 자리 잡았다. 삼척 곰치국, 푹 떠서 한입에 쏙 들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살이 워낙 부드러워 흐물흐물한 식감이 독특하고, 묵은 김치의 맛이 고스란히 밴 국물도 시원하고 담백하다.
◇ 천대받던 생선 ‘귀한 몸’으로 화려한 변신
곰치는 이름도 다양하다. 서해안과 남해안에선 물메기라고 불린다. 동해에선 곰치와 물곰, 마산ㆍ진해에서는 미거지와 물미거지, 서해에서는 잠뱅이와 물잠뱅이로 부른다. 뱀처럼 징그럽게 생겨서 어부들은 종종 바다에 버렸다. 이때 바닷물 속에 빠지면서 ‘텀벙 텀벙’ 소리를 낸다고 해서 ‘물텀벙’이란 별명도 붙었다. 표준어는 ‘물메기’다. 머리의 폭이 넓고 납작한 물메기는 우리 바다 전역에 서식하고 있는데, 수심이 50~80m 되는 바다에 서식한다. 길이는 70~80㎝, 무게도 꽤 나가는 곰치의 산란기는 12~3월이다.
곰치는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듯이 끓이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강원도에선 묵은 김치를 넣어 시큼하게 끓이지만 남해와 서해에선 무와 파, 마늘을 넣고 맑게 끓인다. 삼척의 곰치국은 가게마다 김치 맛과 손맛이 다르다 보니 그 맛이 모두 제각각이다.
삼척의 유명한 곰치 식당 중에서 바다횟집을 빼놓을 수 없다. 살이 무른 곰치 몇 토막에 잘 묵은 김치를 숭숭 썰어 넣어 푹 끓여낸 곰치국은 김치의 상큼한 맛과 곰치의 담백한 맛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살이 연해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 유일한 생선이기도 하다.
몸통 살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으면 흐물흐물한 살이 스르르 녹는다. 곰치국은 김치 맛이 국물 맛을 좌우하는데 바다횟집은 1년간 숙성시킨 묵은 김치를 사용한다. 또 젓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고춧가루는 태양초를 쓴다. 곰치 한그릇의 가격은 잡히는 양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곰치는 찜을 해 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다. 찜을 하려면 껍질을 벗겨내고 내장을 제거한 뒤 황태를 말리듯 건조한다. 말린 곰치의 살은쫄깃쫄깃하게 변한다. 이 말린 곰치를 찌면 대구보다 더 맛있다는 곰치찜이 된다.
곰처럼 미련스럽고 퉁퉁하게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진 곰치는 해장에 좋은 단백질과 비타민, 아미노산이 풍부해 복어와 쌍벽을 이룬다고 할 만하다. 또 지방이 적어 다이어트에도 좋고, 철분과 칼슘 등도 포함돼 있어 보양식으로도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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