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시장, 한국만 냉골.. 가계부채가 '족쇄'로
미국 주택시장은 2011년 4분기까지 암흑기였다. 2006년 정점을 찍은 미국 주택가격은 6년 연속 하락해 2011년 말엔 고점의 67% 수준을 기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미국 주택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집값이 완전히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전국 주택가격을 지수화한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지난해 1분기 124.06을 기록한 뒤 6분기 연속 올라 올해 2분기 146.32(13.8% 상승)로 올랐다. 올해만 5% 오르면서 상승 속도도 빨라졌다.
거래량도 늘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달 기존 주택거래 실적은 548만 채(연간 환산 기준)로 2007년 2월 이후 가장 많았다. 이준혁 현대경제연구원 위원은 "가격과 거래량이 함께 늘었기 때문에 미국 주택시장은 바닥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주택경기도 살아나고 있다. 부동산 경기 과열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다. 영국 정부가 주택 자금의 20%까지 무이자로 빌려주는 등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펼치면서 지난달 주택가격이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장기 침체에 빠졌던 일본에서도 아베노믹스 효과로 주택 수요가 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도쿄 등 대도시 주택 거래가 늘고 주택담보대출 금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영ㆍ미ㆍ일 등 선진국의 주택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부동산 거품과 함께 쌓인 막대한 가계부채가 줄어드는 '가계부채 디레버리징'이 진행되면서 가계의 구매력이 살아난 덕이다. 정부의 잇단 부동산대책에도 집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 우리나라 사정과 비교하면 부러울 정도다.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국가들도 2006년 막대한 가계부채가 발생했다. 국민들이 너도나도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산 탓이다. LG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7년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미국이 129%, 영국은 153%에 달했다. 미국은 모기지 대출 잔액이 2008년 중반 15조 달러에 근접할 정도였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 뒤 미국과 영국에선 고통스러운 가계부채 조정이 있었다.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집을 팔거나 경매에 넘겼다. 이를 통해 2007~2012년 미국의 모기지 대출 잔액은 13조 달러 규모로 줄었고, 영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도 15%포인트 줄었다.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주택가격이 고점대비 20~30% 떨어지면서 지난해부터 영국과 미국 부동산시장엔 더 이상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자리잡았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저금리 기조로 힘을 실었고, 실탄이 풍부해진 가계가 다시 한번 부동산시장에 나서면서 주택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하려면 1,000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정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가계부채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에 선진국과 달리 가계의 구매력이 떨어졌고, 정부가 영미처럼 저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더라도 거래가 미미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를 단기간에 줄일 순 없는 노릇이라 당분간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 활성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채를 상환하면서 집값이 떨어지면 경기침체가 악화할 위험도 높아진다. 정부가 고정금리 장기대출 전환 등 대출 안전성을 높이고 있지만 근본해법은 아니다. 선진국과 달리 감내해야 할 고통을 뒤로 미룬 결과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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