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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함께한 공간도 추억으로

자연환경·국방. 통일

by 21세기 나의조국 2013. 2. 1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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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함께한 공간도 추억으로

서울 종로구 ‘수애헌’의 건축주는 20여 년 전에 지은 집의 골조라도 남기고 싶어 했다.

그의 애착을 고려해 예전 공간을 간직하면서도 더 편리한 집으로 리모델링했다.

시사인   [281호] 승인 2013.02.16  04:11:44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5년 전, 절친한 고교 친구가 작은 설계 프로젝트도 하는지 몇 번이나 물어온 적이 있다. “예스”라고 대답할 때만 해도 그가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건축설계 프로젝트인 것으로 알았는데, 약속 후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그의 자형이 운영하는 구로구청 인근의 한 피부과의원이었고 그곳 원장과 얘기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이 피부과 인테리어 작업이라는 걸 알았다.

 

당시 내 상황은 친구가 미리 인테리어 일이라고 했으면 거절했을 정도로 많이 바빴다. 더구나 인테리어 일은 현장 중심으로 진행이 되기에 시간을 많이 뺏기는 작업이었고 그 시기에 진행 중인 일이 많았던 나는 직접 현장을 챙기며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하겠다고 약속하고 현장까지 간 터라 거절하기가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일을 맡았다. 인테리어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건축주는 주택 리모델링을 다시 맡겼다. 그렇게 해서 2010년에 의뢰를 받고 2011년에 공사를 하게 된 집이 수애헌(守愛軒)이다.

   
ⓒ진효숙
평창동 경사지에 있는 수애헌의 정면(위)모습. 산자락의 이미지를 담은 2개의 산과 같은 형태다.

 

대지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주택가 중간 허리 부분 북서쪽으로 12m의 주택가 도로에 면해 있었고, 건물은 남동쪽과 북서쪽을 축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이 집은 원래 건축주가 40대 시절, 부모님과 두 자식 등 3대가 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지상 3층 규모의 전형적인 평창동 경사지 주택이다.

 

도로와 마당이 1개 층 정도 차이가 나서 1층이 마당 레벨이라 반은 지하에 묻힌 상태이며, 2층이 도로 레벨과 같아 도로 쪽에서는 2층집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약 20년 전에 지은 주택들 대부분이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이나 석재 마감을 했는데 이 건물은 철골조에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W패널이라는 단열 성능을 가진 기성재 벽 패널을 사용한 점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건물이라 신축성이 큰 철골조의 특성상 이질적인 벽 재료와 이격이 되어 누수가 발생했고, 각 실이 좁고 층고가 낮아 매우 불편했으며, 부모가 돌아가셔서 새로이 공간 배치를 할 필요가 있었다.


 

   
ⓒ진효숙
평창동 경사지에 있는 수애헌의 측면 모습.

북악산의 전망을 화장실에서도

건축주는 필요한 공간들을 가능하면 크고 여유 있게 계획해달라고 했고, 거기에 더해 기존 외벽과 철골 구조는 가능하면 그대로 살려줄 것, 마당과 거실을 연결하는 기존 철골조 정자는 철거할 것, 2층 지붕 처마 아래 철골빔에 비둘기들이 앉아 오물을 테라스에 배설하지 않도록 할 것,

 

마당의 잔디 관리를 위해 목재 데크 면적을 더 크게 하고 대문과 주차장 사이에 눈·비가 떨어지지 않게 덮어달라는 따위 몇 가지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건축가를 신뢰하니 설계가 끝나면 시공은 직접 주도해 직영에 가깝게 운영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설계 전에 이 오래된 주택을 실측하고 구조와 벽 상태를 확인한 결과 반지하층에 해당하는 1층의 콘크리트 구조와 2층과 3층의 철골구조는 모두 양호해 그대로 사용해도 되었으나 2, 3층의 벽체는 예상과 달리 사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부실해 골조를 제외하고는 모든 벽체를 재시공해야 할 상황이었다.


자녀들이 결혼 뒤에도 모여 살 집


건축주와 의논해 돌아가신 부모님이 사용하던 마당 레벨의 1층을 안방과 드레스 룸, 욕실, 서재 등 건축주 부부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공간으로, 도로 레벨인 2층은 거실과 주방, 식당 등 공용 공간, 그리고 3층은 가족실과 두 남매를 위한 침실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 집은 동쪽으로 북악산이 보여 전망이 좋았기에 모든 침실의 창을 동쪽 모서리로 새로 만들어 경관을 살리도록 했다. 식탁에서도 북악산 자락이 전망되도록 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북악산이 보이도록 계획한 것은 이 집의 위치에서 얻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거실은 이전의 부부가 사용하던 안방과 테라스 공간을 합쳐 넓게 계획했고, 여기에 면해 1층 마당의 데크로 통하는 출입문 상부에 캐노피 구실을 겸하도록 남동쪽으로 발코니를 달아냈으며, 아래층 서재 옆의 가벽 사이에 심은 대나무가 2층 거실에서도 보이도록 액자 같은 수평창을 설치했다. 모든 침실에는 충분한 수납공간을 두었고 방에서 필요한 가구를 붙박이로 제작해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 집의 원래 외형은 완만한 2개의 곡선 지붕이 대칭 형태를 이루는 것이었으나 마감재를 새로운 티타늄 아연판 지붕재로 교체하면서 배수가 잘 되도록 경사진 형태를 취하고 그것이 2, 3층의 샌드스톤(사암) 외벽을 따라 흐르도록 하면서 산자락에 있는 마을의 이미지를 담은 2개의 산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거실 창문은 개방감을 주도록 크게 하고, 침실은 비교적 깊이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작고 제한된 방향으로 계획했으며, 계단과 거실 부분에 스크린형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필요에 따라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공사는 내 책임 아래 현장 소장과 건축주가 직영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진효숙
수애헌 2층 내부(왼쪽). 주방과 식당 등 공용 공간으로 만들었다.

 

40대에 이 집을 지은 건축주가 20여 년이 지나 이전 집을 헐어 새로 짓지 않고 리모델링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지만(정확하게는 안 물어본 것이 맞는 표현이다), 불편했던 것을 참고 지낸 세월을 얘기하는 건축주의 말 속에서 이 집에 대한 애증을 느낄 수 있었다.

 

40대에 시작해 건축주의 전성기를 함께한 이 공간에 대해 이제는 불편함까지 익숙해질 정도로 애정이 강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집과 공간에 대한 향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골조만이라도 남겨두고 추억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재배치되는 공간이라도 그 사이에 남아 있는 자리, 장소, 터에 대한 기억은 뚜렷할 것이기에. 그래서 건축주는 본인이 생각하는 추억과 향수의 공간을 간직한 채 새로워진 공간에 만족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생활하기에는 이전보다 분명히 좋아졌기에.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자녀는 아파트에 잠시 옮겨 사는 동안 “언제 평창동 집으로 돌아가느냐”라며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결혼도 할 것이며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수애헌은 두 자녀가 결혼해 3가구가 살게 되더라도 불편하지 않도록 미리부터 계획했다.

 

지하 주차와 엘리베이터, 겨울에도 반소매 차림으로 지내는 아파트의 편리함을 그들이 몰랐을 리 없건만, 집으로 가는 길과 그에 면한 아름다운 일상, 마당이라는 외부 공간에서 느끼는 사계절의 풍광 등 단독주택이 가져다주는 공간의 가족성이나 정서적 효과를 더 크게 느낀 듯하다. 수애헌에 대한 건축주 가족의 사랑이 끝까지 지속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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